2023년이 되고 한 달 반쯤 지나서야 지난해 하반기를 정리해봅니다.
1년의 쉬는 시간을 마무리한 게 작년 8월이었고, 9월부터는 예약 시스템 기획을 하면서 지냈어요.
그 사이에 블로그가 한동안 조용했던 건, 쓸 게 없어서가 아니라 새로 배우는 게 너무 많아서 글로 옮길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조금 숨을 돌렸으니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올해는 어떻게 지내고 싶은지 적어보려고 해요.
쉬는 시간을 정리하면서 다음에 하고 싶은 일로 꼽았던 게 예약과 운영 도메인이었습니다.
마침 그쪽 기획을 맡아볼 기회가 와서 9월부터 시작하게 됐어요.
어떤 형태로 일하게 됐는지까지 이 블로그에 적을 생각은 없고, 하는 일 자체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제가 맡은 건 한 업장만 쓰는 예약 프로그램이 아니라, 여러 업장이 각자의 이름으로 들어와서 쓰는 구조의 예약 서비스를 기획하는 일입니다.
이런 구조를 흔히 멀티테넌트라고 부르는데, 처음에는 이 말부터 낯설었어요.
예를 들어 미용실 하나, 네일숍 하나, 스튜디오 하나가 각각 같은 서비스를 쓰지만 서로의 예약 데이터는 보이지 않아야 하고, 영업시간이나 취소 규정은 업장마다 달라야 합니다.
한 번 만들어서 여러 곳에 쓰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같은 것"과 "다른 것"을 계속 구분하는 일이 기획의 핵심이더라고요.
처음 두세 달은 솔직히 헤맸습니다.
이전에 했던 기획과는 질문의 종류가 달랐어요.
화면이 어떻게 생겼는지보다, 규칙이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먼저 정해야 했거든요.
영업시간이 있고, 휴무가 있고, 서비스마다 걸리는 시간이 다르고, 그걸 담당하는 직원이 있고, 직원도 쉬는 날이 있습니다.
이 조건들을 겹쳐서 "그래서 몇 시에 예약할 수 있나요?"에 답을 내는 게 생각보다 훨씬 까다로웠어요.
그때 가장 도움이 됐던 건 쉬는 시간 동안 정리하던 습관이었습니다.
모르는 용어는 바로 적어두고, 개발자와 이야기하면서 헷갈린 부분은 그날 저녁에 정리해서 다시 확인했어요.
"오늘 이해한 것, 아직 이해 못한 것" 두 줄만 적어도 다음 날 질문이 훨씬 구체적이 됐습니다.
용어를 맞추지 않으면 같은 단어를 쓰면서 서로 다른 얘기를 하게 된다는 걸 몇 번의 엇갈림을 통해 배웠어요.
예를 들어 "예약"이 고객이 누른 요청인지, 업장이 승인해서 확정된 건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규칙이 필요한데, 한동안 서로 다른 의미로 쓰고 있었습니다.
익숙해지기 전까지 가장 힘들었던 건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같은 요구라도 업장 규모와 업종에 따라 합리적인 규칙이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1인 미용실은 당일 예약을 열어두는 게 편할 수 있지만, 여러 명이 일하는 큰 매장은 전날까지만 받는 게 운영하기 쉬울 수 있어요.
그래서 하나의 규칙을 정하기보다 "설정으로 열어둘 것"과 "서비스가 정해줄 것"을 나누는 데 많은 시간이 들었습니다.
이 경계를 어디에 그을지 고민하는 게 이 일의 큰 재미이자 어려움이라는 걸 그때부터 알게 됐어요.
작년 11월 말에 ChatGPT가 공개되면서 분위기가 한 번 크게 바뀌었습니다.
저는 쉬는 시간 동안에도 GPT-3나 이미지 생성 모델 소식을 눈여겨보고 있었지만, 대화창에서 누구나 바로 써볼 수 있다는 건 다른 차원의 경험이었어요.
처음 쓴 날은 한참 질문을 이어 붙이면서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 며칠 지나서는 "이걸 내 일에 어떻게 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정책 문서의 초안을 잡거나, 예외 케이스를 같이 떠올려보거나, 헷갈리는 개념을 쉽게 풀어달라고 부탁하는 식입니다.
동시에 그럴듯한 말로 틀린 내용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모습도 봤어요.
그래서 지금은 "아주 빠른 조수이지만 사실 확인은 내가 해야 한다"는 쪽으로 감을 잡아가는 중입니다.
이 부분은 곧 따로 정리해서 올리려고 해요.
하반기를 돌아보니 두 가지가 눈에 띕니다.
하나는 도메인 기획에 깊이 들어갈수록 "작은 규칙 하나"가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체감하게 됐다는 점이에요.
다른 하나는 AI 공부를 병행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점입니다.
저녁이나 주말에 한두 시간씩 꾸준히 보는 정도로도, 반년 전과 비교하면 이해하는 범위가 꽤 달라졌어요.
다만 두 갈래를 동시에 챙기다 보니 어느 쪽도 충분히 파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새로 나오는 소식은 끝이 없으니까요.
무엇을 따라가고 무엇을 흘려보낼지 정하는 일이 올해의 숙제인 것 같습니다.
올해 목표는 크게 세 가지로 잡았습니다.
첫째, 예약 시스템의 핵심 개념을 문서로 정리하기.
용어, 도메인 모델, 시간 계산 규칙, 권한, 알림 같은 것들을 한 번씩 글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글로 설명할 수 있어야 제대로 이해한 거라고 믿기 때문이에요.
둘째, AI는 개념 공부에서 한 걸음 더 나가기.
프롬프트를 쓰는 데서 그치지 않고, API를 직접 호출해보고 간단한 흐름을 만들어보는 것까지 해보고 싶어요.
코드를 잘 짜는 게 목적이 아니라, 무엇이 되고 무엇이 안 되는지 감각을 얻는 게 목적입니다.
셋째, 기록 이어가기.
거창한 글이 아니어도 괜찮으니 한 달에 몇 편이라도 꾸준히 남기기.
쉬는 시간 동안 가장 크게 남은 게 기록이었으니, 이 습관만큼은 잃고 싶지 않습니다.
목표를 적으면서 일부러 숫자는 많이 넣지 않았습니다.
몇 편을 쓰겠다, 몇 시간을 공부하겠다는 식으로 정하면 지키지 못했을 때 그것만 눈에 들어와서 오히려 지치더라고요.
대신 분기마다 한 번씩 "이번 분기에 새로 이해한 것 세 가지"를 적어보는 점검만 해보려고 합니다.
쉬는 시간 동안 월 단위로 점검하던 방식을 조금 느슨하게 가져온 거예요.
돌아보면 작년 하반기는 "다시 기획으로 돌아온 시간"이었습니다.
쉬는 동안 정리한 것들이 실제 일에서 뜻밖에 도움이 되는 순간들이 있었고, 반대로 일을 하며 새로 알게 된 것들은 앞으로의 글감이 되어주고 있어요.
올해는 이 두 가지를 이어서 쓰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예약 시스템 기획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정리했던 용어들부터 풀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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