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잠시 쉬기 시작한 지 어느새 다섯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처음 계획을 세울 때 정한 대로 한 달에 한 번 점검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반년에 가까운 시점이라 조금 더 길게 돌아보기로 했어요.
주간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 보니, 기억하던 것과 실제로 한 일이 꽤 달랐습니다.
잘했다고 생각한 것은 별것 아니었고, 대충 넘겼다고 생각한 것이 의외로 쌓여 있기도 했어요.
그 차이를 포함해서 중간 점검을 적어 둡니다.
가장 확실하게 한 건 기록입니다.
주간 기록은 몇 주 빠졌지만 대체로 이어 갔고, 글로 남긴 것도 생각보다 많아졌어요.
불편함 노트, 아이템 후보 정리, 시장 규모 연습, 인터뷰 정리처럼 파일이 쌓이는 걸 보면 시간이 그냥 흘러간 건 아니구나 싶습니다.
아이템 후보를 좁히는 작업도 진전이 있었습니다.
처음 열 개 가까이 되던 후보가 지금은 두세 개로 줄었어요.
줄었다기보다 "문제의 모양이 비슷한 것끼리 묶였다"는 말이 더 정확한데, 연락과 일정 조율, 작은 업장의 운영 같은 주제로 모이는 느낌입니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시작했어요.
가정 예시로 말하자면 소규모 업장을 운영하시는 분, 그런 곳을 자주 이용하는 지인 같은 분들을 만나 최근 겪은 일을 물어보는 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질문을 많이 틀렸지만 회차가 쌓이면서 조금씩 나아졌다고 믿고 있어요.
책도 꽤 읽었습니다.
린 스타트업이나 제로 투 원 같은 창업 책, 제품 관리에 관한 책, 고객 인터뷰에 관한 책을 읽고 각각 한 번씩은 내 말로 정리해 보았어요.
정리하는 시간이 읽는 시간만큼 걸렸지만, 정리한 것만 기억에 남아 있는 걸 보면 시간 투자가 헛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반대로 못 한 것도 분명합니다.
가장 아쉬운 건 작게 직접 만들어 보기입니다.
처음 계획의 세 번째 항목인데, 솔직히 계획만큼 하지 못했어요.
생각하고 정리하고 읽는 일은 계속 했는데, 막상 화면 하나를 끝까지 만드는 일은 자꾸 뒤로 밀렸습니다.
아마 만드는 순간 "내 아이디어가 틀렸다"는 걸 확인하게 될까 봐 무의식적으로 피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사람 수입니다.
인터뷰를 한 사람이 아직 많지 않고, 지인 중심이라 편향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모르는 사람, 즉 내 호의적인 시선이 없는 사람에게 묻는 건 한 번도 제대로 못 해 봤습니다.
그리고 일정이 느슨해지는 시기가 있었어요.
특히 연말 즈음에는 주간 기록이 두 주 연속 비어 있었는데, 그때 월 점검에서 "왜 비었는지"를 적어 보니 단순히 게을러서가 아니라 목표가 흐려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목표가 흐려지면 기록 같은 습관부터 무너진다는 걸 몸으로 배웠어요.
처음에는 "좋은 아이템 하나를 찾는 것"이 이 시간의 목표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봐요.
첫째, 아이템은 찾는다기보다 좁혀 가는 것이라고 느낍니다.
머리로 완벽한 아이템을 떠올리기보다, 작은 질문과 작은 확인을 반복하면서 후보가 저절로 줄어드는 과정이 훨씬 현실적이었어요.
둘째, 확신은 생각만으로는 생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머릿속에서는 그럴듯해 보이던 것이 사람을 만나면 허무하게 무너지기도 하고, 반대로 별 기대 없던 이야기가 크게 와닿기도 했습니다.
확신은 몇 번이고 만나서 들은 만큼만 생긴다고 정리했어요.
셋째, 창업이라는 말에 대한 생각입니다.
처음에는 "언젠가 해 보고 싶은 큰 일"이었는데, 요즘은 오히려 "작은 확인을 쌓아 가는 일상의 습관"에 가깝게 느껴져요.
거창한 선언보다 오늘 인터뷰 질문 하나를 고치는 일이 더 창업에 가까워 보입니다.
넷째, 제 일에 대한 시선도 달라졌어요.
기획자로 일할 때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 예를 들면 용어를 맞추고 예외 상황을 정리하고 운영하는 사람의 하루를 상상하는 일이 사실은 꽤 값진 역량이라는 걸 밖에서 보니 알겠더라고요.
이건 앞으로 어떤 방향을 택하든 제 강점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점검을 하다 보니 기존 규칙만으로는 부족한 부분도 보였습니다.
그래서 월 점검 때 쓰는 질문을 세 개로 정해 두었어요.
이번 달에 내가 틀렸다고 확인한 것이 하나라도 있는가, 사람을 만나서 새로 알게 된 사실이 있는가, 아직도 "그럴 것 같다"로만 남아 있는 가정은 무엇인가입니다.
첫 번째 질문에 답이 없으면 그 달은 확인 없이 생각만 한 달이라는 뜻이라서, 다음 달 계획에 반드시 외부 확인 행동을 하나 넣기로 했어요.
예를 들어 지난달 기록에서 "작은 업장 운영자는 예약 알림에 돈을 쓰려 하지 않을 것 같다"라는 가정이 한 줄 적혀 있었는데, 확인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런 가정이 몇 달째 남아 있는 걸 보면 슬그머니 사실처럼 굳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뜨끔했어요.
남은 시간은 세 가지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첫째는 작게 직접 만들어 보기를 정말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노코드 도구든 간단한 페이지든, 이번 달 안에 아주 작은 프로토타입 하나를 끝까지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완성도가 낮아도 괜찮고, 일단 사람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상태가 목표입니다.
둘째는 모르는 사람 인터뷰입니다.
지인이 아닌 사람 다섯 명 이상을 만나는 것을 목표로 잡았어요.
소개를 부탁하거나 자리를 찾아가는 일이라 쉽진 않겠지만, 그만큼 정보 가치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셋째는 정리한 것을 문서로 묶는 일입니다.
지금까지의 기록을 사업계획서 같은 구조로 한번 엮어 보면 비어 있는 부분이 어디인지 훨씬 선명하게 보일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앞서 정리한 시장 규모나 비즈니스 모델도 다시 다듬게 되겠죠.
반년이 지났지만 아이템에 대한 확신은 아직 없습니다.
그건 처음부터 각오하고 있던 일이라 크게 조급하진 않아요.
다만 "확신이 없는 이유"가 처음보다 훨씬 구체적이 되었다는 건 분명한 변화입니다.
무엇을 모르는지를 적어 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게 반년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해요.
남은 반년이 지났을 때도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때 이 글을 다시 꺼내 읽으면, 지금 걱정하는 것 중 무엇이 풀렸는지 확인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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