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부터 회사를 조금 쉬기로 했습니다.
쉰다고 하면 대부분 "많이 힘들었구나" 하고 먼저 걱정해 주시는데요.
솔직히 말하면 번아웃이라고 부를 만한 상태는 아니었어요.
몸이 아프거나 일이 싫어진 것도 아니었고요.
다만 몇 년 동안 서비스 기획과 PM 일을 하면서 계속 마음에 걸리던 것이 있었습니다.
일을 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정리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쉬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한 번 멈춰서 정리하는 시간을 만들어 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1년의 계획을 기록 삼아 적어 둡니다.
일하면서 쌓인 것들이 머릿속에만 있고 밖으로 꺼내진 적이 없었습니다.
기획서는 많이 썼지만 "나는 어떤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인가" 같은 질문에는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았어요.
회의가 이어지는 날에는 퇴근하고 나서도 다음 날 할 일만 떠올랐고, 어제 한 일을 돌아볼 여유는 거의 없었습니다.
또 하나는 창업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언젠가 내 서비스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늘 "나중에"라고 미뤄 두고 있었어요.
그런데 나중이 언제인지 정해 두지 않으면 정말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당장 무언가를 시작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창업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창업이 나에게 맞는지 1년 동안 차분히 살펴보는 것은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1년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결과를 약속하지 않고, 준비하고 정리하고 공부하는 시간이라고 스스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너무 많은 목표를 잡으면 쉬는 동안에도 쫓기게 될 것 같아서, 딱 세 가지로 줄였습니다.
첫째는 아이템 탐색입니다.
머릿속에 흩어져 있는 불편함과 아이디어를 모아서, 어떤 문제가 풀 만한 문제인지 가려 보려고 해요.
이건 시장 조사, 고객 이야기 듣기, 경쟁 서비스 살펴보기까지 이어질 것 같습니다.
둘째는 배운 것 정리입니다.
창업 책, 사례, 강의 같은 것을 읽고 끝내지 않고 내 말로 다시 적어 보려고 합니다.
린 스타트업이나 비즈니스 모델 같은 말은 이미 아는 것 같아도, 막상 "내 아이템에 적용해 봐" 하면 손이 멈추더라고요.
그래서 읽은 것을 꼭 한 번은 내 상황에 대입해서 적어 보기로 했습니다.
셋째는 작게 직접 만들어 보기입니다.
기획자로 일하면서 늘 개발자와 디자이너의 손을 빌려 왔는데, 이번에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내가 직접 끝까지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화면 하나, 입력 폼 하나, 간단한 시험 페이지 정도면 충분합니다.
만들어 봐야 어디서 막히는지, 기획서에 쓴 문장이 실제로는 얼마나 모호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예를 들어 "동네 소규모 가게의 예약을 돕는 서비스" 같은 막연한 생각이 있다고 해 볼게요.
탐색 단계에서는 그런 가게 운영자가 실제로 어떤 불편을 겪는지 적어 보고, 정리 단계에서는 관련 책의 관점으로 그 불편을 다시 읽어 보고, 만들어 보는 단계에서는 가장 단순한 예약 폼 하나를 직접 만들어 보는 식입니다.
세 가지가 서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목표예요.
쉬는 시간은 자유로운 만큼 쉽게 흐트러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규칙을 정해 두었어요.
하나는 주 단위 기록입니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 이번 주에 한 것, 못 한 것, 다음 주에 할 것을 짧게 적습니다.
길게 쓰지 않아도 되고, 세 줄이어도 괜찮다고 정했어요.
중요한 것은 빠지지 않고 적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분량 기준은 일부러 낮췄습니다.
또 하나는 월 단위 점검입니다.
한 달에 한 번은 주간 기록을 쭉 다시 읽어 보고, 처음 세운 세 가지 목표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확인합니다.
벗어난 것이 나쁜 일은 아니지만, 왜 벗어났는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마지막 규칙은 "읽은 것은 반드시 한 번은 내 말로 적는다"입니다.
읽기만 하면 공부한 기분만 남고 실제로는 남는 게 없다는 걸 일하면서도 여러 번 겪었거든요.
이 블로그를 다시 정리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걱정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가장 먼저 걸리는 건 시간이 지나면서 감각이 무뎌지는 것입니다.
현업에서 매일 부딪치던 문제들과 조금 거리가 생기면, 다시 돌아왔을 때 따라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두 번째는 혼자 하다 보면 생기는 자기합리화입니다.
회의에서 누군가 "이건 왜 이렇게 생각했어요?" 하고 물어봐 주던 일이 사라지면, 내 아이디어가 그럴듯해 보이기만 해도 넘어가 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 분들께 중간중간 보여 주고 이야기를 듣는 일을 계획에 넣어 두었어요.
세 번째는 결국 아무 결론 없이 1년이 지나가는 경우입니다.
창업 아이템에 대한 확신이 끝내 생기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때는 그 사실 자체도 하나의 결과라고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확신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도, 1년을 들여서 확인할 가치가 있는 정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생활의 문제도 있습니다.
쉬는 동안의 지출을 어떻게 관리할지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여서, 별도로 계산해 두었습니다.
이 부분은 블로그에 자세히 적기보다 제 안에서 먼저 정리해 두려고 합니다.
지금은 설렘 반, 불안 반입니다.
그래도 1년 뒤에 "그때 한 번 멈추길 잘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지금 정한 규칙을 지키는 일이 제일 중요할 것 같아요.
아이템을 찾고, 책을 읽고, 작게 만들어 보는 일을 기록으로 남기다 보면 이 블로그가 그대로 1년의 지도가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올리는 글들은 잘 정리된 정답이라기보다, 공부하고 시도하는 중간 기록에 가깝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남은 질문은 하나입니다.
1년이 끝났을 때 저는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요.
그 답을 이 기록 안에서 같이 찾아가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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