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팀 개발자들이 하나둘 AI 코파일럿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그냥 "타이핑 좀 줄어드나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몇 달 지나고 보니, 코드 작성 속도만 바뀐 게 아니라 저와 개발팀이 협업하는 방식 자체가 꽤 많이 달라져 있더라고요.
오늘은 그 변화를 기획자 입장에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회의에서 사라진 질문들
예전에는 스프린트 계획 회의 때 이런 질문이 꼭 나왔습니다.
"이거 얼마나 걸릴까요?"
"이 부분 구현하려면 기존 코드 어디를 건드려야 하나요?"
이런 질문에 답하려고 개발자가 코드를 뒤져보는 데만 회의 시간의 상당 부분이 쓰였어요.
그런데 코파일럿을 쓰기 시작한 뒤로는, 개발자들이 회의 전에 이미 코파일럿한테 물어보고 대략적인 영향 범위를 파악해서 들어오더라고요.
회의 시간이 눈에 띄게 짧아졌습니다.
저희 기준으로 스프린트 계획 회의가 평균 90분에서 55분 정도로 줄었어요.
처음엔 "회의가 왜 이렇게 빨리 끝나지?"하고 오히려 어색했습니다.
코드 리뷰에 기획자가 들어가기 시작한 이유
이건 저희 팀만의 특이한 변화일 수도 있는데, 최근엔 제가 코드 리뷰 채널에 초대되는 일이 늘었습니다.
정확히는 코드를 리뷰하는 게 아니라, 코파일럿이 생성한 코드에 달린 주석이나 커밋 메시지를 같이 보면서 "이게 원래 기획 의도랑 맞는지"를 확인하는 역할이었어요.
코파일럿이 코드를 빠르게 뽑아내다 보니, 가끔 기획 의도와 살짝 다른 방향으로 구현이 되는 경우가 있었거든요.
예를 들어 "환불 요청은 3일 이내만 가능"이라고 PRD에 적어뒀는데, 코파일럿이 생성한 초기 코드에는 이 예외 조건이 빠져 있던 적이 있었습니다.
개발자가 그걸 놓치고 그대로 머지했으면 꽤 큰 버그가 됐을 텐데, 다행히 리뷰 단계에서 걸러졌어요.
이 일을 겪은 뒤로 저희 팀은 "AI가 생성한 코드는 기획자도 최소 한 번은 훑어본다"는 규칙을 슬쩍 추가했습니다.
PRD에 코드 스니펫을 넣게 된 변화
재밌는 변화 하나는, 제가 PRD를 쓸 때 예전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쓰게 됐다는 거예요.
전에는 "이런 로직으로 처리해주세요"라고 텍스트로만 적었는데, 요즘은 개발자가 "그 부분 예시 입출력 좀 표로 정리해주실 수 있어요?"라는 요청을 자주 합니다.
코파일럿한테 명확한 지시를 주려면 개발자도 애매한 요구사항보다 구체적인 예시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래서 요즘 저는 PRD에 "입력이 이렇게 오면 출력은 이렇게 나와야 한다"는 예시 표를 꼭 넣습니다.
처음엔 좀 귀찮았는데, 막상 해보니 오히려 저도 요구사항을 더 명확하게 정리하게 되어서 결과적으로 저한테도 도움이 됐어요.
여전히 안 바뀐 것들
다만 모든 게 바뀐 건 아닙니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 "이 기능을 지금 해야 하는가"를 판단하는 것, 사용자 인터뷰에서 나온 이야기를 해석하는 것 - 이런 부분은 코파일럿이 아무리 좋아져도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오히려 반복 작업이 줄어든 만큼, 이런 판단에 쓸 시간이 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개발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코드 짜는 시간은 줄었는데, 이게 맞는 방향인지 고민하는 시간은 그대로거나 오히려 늘었다"고요.
협업의 무게중심이 옮겨간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코파일럿 도입 이후 가장 크게 바뀐 건 "속도"가 아니라 "협업의 무게중심"이었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기획자가 요구사항을 던지고 개발자가 구현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그 사이에 오해가 생겨도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바로잡을 여유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구현 속도가 워낙 빨라져서, 처음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면 그 오차가 그대로 빠르게 코드로 굳어버려요.
그래서 저는 요즘 더 꼼꼼하게,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1년 전보다 회의는 짧아졌는데 PRD 쓰는 시간은 오히려 늘었다는 게 좀 아이러니하지만, 지금 시점에는 이게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코파일럿이 더 똑똑해지면 이 균형이 또 어떻게 바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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