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이 블로그의 예전 글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어봤습니다.
2019년, 처음 스프린트를 리드하면서 삐걱거렸던 이야기부터, 최근 AI 에이전트 시대의 PM 역할을 고민하던 글까지.
쭉 읽고 나니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같은 사람이 쓴 글인데, 문체도 관심사도 꽤 많이 달라져 있더라고요.
사실 이 블로그를 정리하게 된 계기는 단순합니다.
방치해둔 글이 너무 많았어요.
초안으로 써두고 발행하지 않은 글, 예전에 쓴 글인데 지금 보니 틀린 내용이 섞여 있는 글, 카테고리도 뒤죽박죽이었습니다.
언젠가 정리해야겠다고 생각만 하다가, 최근에 시간이 좀 나면서 "이번엔 진짜 정리하자"고 마음을 먹게 됐어요.
글을 하나씩 다시 읽으면서 남길 건 남기고, 손볼 건 손보고, 아예 빼야 할 건 빼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게 생각보다 저한테 의미 있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예전 글들이 부끄러우면서도 반갑다는 거였어요.
2019년 스프린트 회고 글을 보면 지금 기준으로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대단한 발견처럼 써놨더라고요.
"DoD를 정의해야 한다"는 지금은 상식이지만, 그때 저한테는 정말 큰 배움이었습니다.
그 부끄러움이 싫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 시절의 제가 뭘 모르고 뭘 고민했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지금의 제가 얼마나 왔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어주더라고요.
메타버스 글을 다시 읽을 땐 조금 다른 감정이었습니다.
당시엔 "1~2년 뒤에 이 글을 다시 보면 제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겠다"고 써놨었는데, 지금 읽어보니 그 예감이 어느 정도 맞았더라고요.
메타버스는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조용히 가라앉았고, 대신 예상하지 못했던 AI 에이전트 흐름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트렌드를 예측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한번 느꼈어요.
그리고 동시에, 그때 그때 판단을 기록해두는 것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습관인지도요.
예측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보다, 그 시점에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를 남겨두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이번에 다시 깨달았습니다.
이 블로그를 정리하면서 새삼 느낀 게 있는데, 저는 결국 이 공간을 "정답을 알려주는 곳"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판단을 기록해두는 곳"으로 써왔더라고요.
챗봇 시나리오를 정리한 글도, PRD 구조를 공유한 글도, 사실은 그 시점의 저한테 필요했던 정리였고, 나중에 다시 읽어보려고 남긴 기록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정보가 되고, 저한테는 그 시절의 제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일기 같은 거였어요.
이 관점으로 보니 어떤 글을 남기고 어떤 글을 정리해야 할지가 좀 더 분명해졌습니다.
완성도가 부족해도 그 시점의 고민이 진솔하게 담긴 글은 남기고, 반대로 그냥 정보를 나열만 한 글은 정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어요.
앞으로도 이 블로그를 거창한 계획 없이, 지금처럼 그때그때의 고민을 기록하는 공간으로 이어가려고 합니다.
다만 이번 정리를 계기로 한 가지는 바꿔보려고 해요.
예전엔 뭔가 완결된 결론이 나야 글을 썼는데, 이제는 결론이 나지 않았어도 "지금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를 좀 더 자주 남겨보려고 합니다.
121번 글에서도 썼듯이, 저도 아직 답을 다 찾은 게 아니거든요.
그리고 그게 오히려 나중에 다시 읽었을 때 더 솔직하고 재미있는 기록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블로그를 정리한다는 게 결국 과거의 저와 다시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서툴렀던 순간들, 틀렸던 판단들, 그래도 그 순간엔 최선이었던 생각들.
이걸 굳이 부끄러워하며 지우기보다, 있는 그대로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몇 년 후에 또 이런 식으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면, 그때는 지금 제가 쓴 이 글들을 보면서 또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합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정답보다는 솔직한 고민을 남기는 사람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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