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계획서가 "내 계획을 자세히 설명하는 문서"라면, IR 덱은 "짧은 시간에 핵심만 전달하는 발표 자료"에 가깝습니다.
쉬는 동안 투자와 IR에 관한 책과 글, 공개된 사례를 읽으면서 덱의 구성을 정리해봤습니다.
제가 투자를 받아본 것은 아니고, 읽고 정리하고 연습해본 내용이라는 점을 먼저 밝혀둡니다.
그래도 기획자 입장에서 "슬라이드를 이런 순서로 놓는 이유"를 이해하는 과정이 꽤 재미있었어요.
자료를 보면 대체로 비슷한 흐름이 반복됩니다.
제가 정리한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 표지: 서비스 이름과 한 줄 소개.
- 문제: 누가 어떤 불편을 겪는가.
- 해결: 우리 방식은 무엇이 다른가.
- 제품: 실제 화면이나 사용 흐름.
- 시장: 얼마나 큰 기회인가.
- 비즈니스 모델: 어떻게 돈을 버는가.
- 고객 반응: 지금까지 확인한 신호.
- 경쟁과 차별점: 고객이 지금 쓰는 대안과 비교.
- 성장 계획: 앞으로 어떻게 키울 것인가.
- 팀: 이 일을 왜 이 사람들이 하는가.
- 재무와 요청: 필요한 자금과 사용 계획.
- 마무리: 핵심 메시지 한 번 더.
장수는 정답이 없고, 상황에 따라 줄이거나 합칩니다.
중요한 것은 장수가 아니라 "이야기의 흐름이 끊기지 않는가"라고 느꼈어요.
여러 글에서 공통으로 말하는 것은, 앞의 몇 장에서 듣는 사람의 관심이 갈린다는 점입니다.
앞의 세 장은 대체로 표지, 문제, 해결이 됩니다.
문제 장표에서는 추상적인 통계보다 구체적인 장면이 먼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소규모 업장용 예약 서비스를 가정한다면, 이런 장면입니다.
"운영하시는 분이 손님 응대 중에 울리는 전화를 받지 못하고, 놓친 예약이 다음 날 항의로 돌아온다."
이 한 장면이 숫자 열 개보다 빨리 이해됩니다.
해결 장표에서는 기능 나열을 피합니다.
"이 서비스를 쓰면 이전과 이렇게 달라진다"를 한 문장으로 보여주는 쪽이 좋았어요.
첫 세 장에서 "이 문제는 실제로 있고, 이 해결은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뒤의 시장이나 재무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연습할 때 앞의 세 장만 따로 가장 많이 다듬었습니다.
팀 장표는 단순한 인물 소개가 아니라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초기 단계에서는 제품이나 매출이 아직 작기 때문에, "이 일을 해낼 사람들인가"가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된다고 해요.
그래서 팀 장표에는 경력 나열보다 "이 문제를 풀기에 이 팀이 왜 적합한가"를 보여주는 내용이 들어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서비스 기획과 운영 쪽 경험이 있다면, 그 경험이 지금 풀려는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한두 줄로 씁니다.
그리고 부족한 역량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채울 계획인지도 솔직하게 보여주는 편이 좋다고 읽었습니다.
저는 기획 쪽 경험이 중심이라, 개발이나 영업 역량은 어떻게 보완할지가 이 장표의 핵심 질문이 될 것이라고 정리해두었어요.
이 부분은 팀 빌딩 글에서 따로 더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덱을 만드는 것과 발표하는 것은 다른 기술이었습니다.
슬라이드가 좋아도 말로 풀지 못하면 소용없더라고요.
제가 해본 연습은 이렇습니다.
먼저 한 장당 30초에서 1분 안에 말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혼자 발표하는 모습을 녹음해서 다시 들었어요.
처음에는 제 목소리를 듣는 것이 민망했지만, 들어보니 "음", "그러니까" 같은 군더더기와 불필요하게 길어지는 부분이 바로 보였습니다.
그다음에는 슬라이드를 보지 않고 말해보았습니다.
슬라이드를 읽으면 듣는 사람은 지루하고, 스스로도 내용을 이해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예상 질문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고객은 왜 지금 쓰는 방법을 바꿔야 하나요?"
"경쟁사가 같은 기능을 만들면요?"
"왜 당신들인가요?"
같은 질문에 한 문장으로 답하는 연습을 해두니, 덱의 약한 부분이 어디인지도 같이 드러났습니다.
슬라이드의 글자는 최대한 줄이는 편이 좋았습니다.
한 장에 하나의 메시지만 담고, 제목에 그 메시지를 문장으로 쓰는 방식이 효과적이었어요.
"시장"이라는 제목보다 "소규모 업장은 아직 예약을 수기로 관리한다" 같은 문장 제목이 훨씬 전달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숫자가 나오는 곳에는 근거를 작게라도 표시합니다.
가정이라면 가정이라고 쓰는 것이 낫습니다.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구분해서 말하는 사람이 더 믿음직하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보았어요.
완성한 덱을 다시 읽어볼 때는 저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문제 장표만 보고도 누가 어떤 상황에서 불편한지 설명할 수 있는가.
시장 장표의 숫자와 비즈니스 모델 장표의 숫자가 서로 맞물리는가.
예를 들어 시장 장표에서는 업장이 아주 많다고 했는데, 모델 장표의 목표 고객 수가 그와 전혀 이어지지 않으면 이야기가 끊깁니다.
이 점검은 서비스 기획서를 검토하던 습관과 거의 같았어요.
화면 흐름이 맞는지 보던 눈으로, 이번에는 이야기 흐름이 맞는지를 보는 셈입니다.
그래서 IR 덱 작업이 낯설지만은 않았고, 오히려 기획자의 도구가 다른 곳에서도 통한다는 점이 신기했습니다.
IR 덱을 만들어보니, 결국 이 작업은 "내 아이디어를 10분 안에 이해시킬 수 있을 만큼 정리했는가"를 확인하는 시험 같았습니다.
투자를 받는 것과는 별개로, 이 정리 과정이 사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남은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제품이 아직 없는 단계에서 고객 반응 장표를 어떻게 채울지, 그리고 지금 단계에서 IR 자료를 만드는 것이 맞는지입니다.
일단은 실제 발표보다는 생각을 정리하는 훈련으로 두고, 인터뷰와 프로토타입으로 신호를 더 모은 뒤에 다시 손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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