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 노트에서 후보가 몇 개 추려지고 나니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생겼습니다.
"이 문제를 풀면 얼마나 큰 시장일까?" 하는 질문이에요.
사업계획서나 IR 자료를 보면 항상 TAM, SAM, SOM이라는 세 단어가 나옵니다.
그동안은 "아, 시장 크기를 말하는 거구나" 하고 대충 넘어갔는데, 막상 내 후보로 직접 계산해 보려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가정 예시 하나를 정해 놓고 직접 손으로 계산해 보았습니다.
정확한 숫자를 맞추는 게 목적이 아니라 계산하는 방법과 사고 과정을 익히는 연습이라는 점을 먼저 밝혀 둡니다.
TAM은 전체 시장입니다.
이 문제를 겪는 모든 사람이나 업장이 우리 서비스를 쓴다고 가정했을 때의 이론적인 최대 규모예요.
SAM은 그중에서 내가 실제로 닿을 수 있는 시장입니다.
제품 형태, 지역, 언어, 채널 같은 조건 때문에 현실적으로 서비스를 팔 수 있는 범위를 말해요.
SOM은 SAM 중에서 일정 기간 안에 내가 실제로 가져올 수 있는 몫입니다.
처음 1~2년 동안 현실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고객 수를 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림으로 그리면 큰 원 안에 중간 원, 그 안에 작은 원이 있는 모양입니다.
숫자가 점점 작아지는 게 정상이고, 오히려 세 숫자가 비슷하면 어딘가 가정이 너무 낙관적이라는 신호일 수 있어요.
예시를 하나 정해 보겠습니다.
"동네의 소규모 업장이 예약과 고객 연락을 한곳에서 관리하게 해 주는 서비스"를 가정해 볼게요.
아래 숫자는 모두 설명을 위한 가정이고, 실제 통계가 아닙니다.
먼저 TAM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예약을 받는 소규모 업장이 가정상 100만 곳 있다고 해 볼게요.
그리고 이런 서비스에 한 곳이 월 2만 원을 낸다고 가정하면, 연간으로는 100만 곳 곱하기 24만 원이 되어 2,400억 원이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이게 이론적인 최대치, 즉 TAM이에요.
다음은 SAM입니다.
처음에는 미용, 네일, 필라테스처럼 시간 단위 예약이 핵심인 업종에 집중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런 업종이 전체의 20퍼센트라고 잡으면 20만 곳이 되고, 그중 스마트폰으로 예약 관리를 받아들일 만한 곳이 절반이라고 가정하면 10만 곳입니다.
10만 곳 곱하기 24만 원이면 240억 원이 SAM이에요.
마지막으로 SOM입니다.
영업 인력도 없고 혼자서 시작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하면, 첫 2년 동안 아주 잘해야 SAM의 0.5퍼센트, 즉 500곳 정도를 얻는다고 볼 수 있어요.
500곳 곱하기 24만 원이면 1.2억 원이 SOM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니 2,400억 원이라는 거대한 숫자와 1.2억 원이라는 숫자가 한 줄에 나란히 있었어요.
자료에서 TAM만 크게 적어 놓는 것이 왜 위험한지 처음으로 몸으로 느꼈습니다.
위 계산은 큰 숫자에서 시작해서 비율로 줄여 나갔기 때문에 탑다운 방식입니다.
통계에서 가져온 전체 규모에 비율을 곱해 가는 방법이고, 빠르게 감을 잡는 데 좋아요.
대신 "20퍼센트", "절반" 같은 비율이 대부분 근거가 약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바텀업은 반대로 작은 단위에서 쌓아 올립니다.
예를 들어 "한 번 영업이나 홍보를 하면 몇 곳이 관심을 보이고, 그중 몇 곳이 실제로 쓰는가"를 가정하고 한 달에 늘릴 수 있는 곳 수를 계산하는 방식이에요.
가령 한 달에 30곳에 직접 연락하고 그중 10퍼센트가 쓴다고 하면 한 달에 3곳, 1년이면 36곳, 2년이면 72곳입니다.
비교해 보니 탑다운에서 나온 500곳이라는 SOM과 바텀업의 72곳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어요.
그 차이는 곧 "내가 상상하는 성장 속도와 현실적인 영업 능력 사이의 간격"이라고 읽힙니다.
두 방식을 같이 해 보면 어느 쪽 가정이 지나치게 낙관적인지 서로 비춰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직접 해 보니 막히는 곳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막힌 건 "전체 업장 수"를 어디서 가져오느냐였어요.
업종 분류가 기관마다 다르고, 예약을 받는 곳만 따로 센 자료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이 숫자는 확실한 통계가 있는 척하지 않고 "대략 이 정도 범위로 가정"이라고 적어 두기로 했어요.
범위로 적어 두면 최소와 최대로 두 번 계산할 수 있어서 오히려 불확실성이 한눈에 보였습니다.
두 번째로 막힌 건 가격이었어요.
월 2만 원이라는 숫자는 그냥 감으로 넣은 값이라, 비슷한 도구들이 어느 정도 받는지 살펴보고 인터뷰에서 지금 쓰는 비용을 물어보기 전에는 근거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격 칸에는 일부러 "확인 전"이라는 표시를 붙여 두었어요.
세 번째는 "한 곳이 우리 서비스만 쓰는가"라는 점입니다.
이미 쓰는 도구가 있다면 갈아타는 비용이 생기니까, 단순히 업장 수에 가격을 곱하는 계산은 너무 후하게 나올 수 있어요.
이 부분은 숫자로 바꾸기보다 "갈아타게 만들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이 연습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최종 숫자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100만 곳이라는 숫자부터 가정이었으니까요.
대신 계산 옆에 "이 숫자를 이렇게 가정한 이유"와 "이게 틀리면 결과가 얼마나 바뀌는지"를 같이 적어 두는 게 훨씬 값어치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월 2만 원"이라는 가정이 1만 원으로 바뀌면 모든 숫자가 절반이 되고, "시간 단위 예약 업종 20퍼센트"가 10퍼센트로 바뀌면 SAM도 절반이 됩니다.
어떤 가정이 결과를 가장 크게 흔드는지 알면, 그 가정부터 먼저 확인하러 나가면 돼요.
그래서 저는 이제 계산표 옆에 항상 세 칸을 둡니다.
가정, 근거(또는 근거 없음), 확인할 방법이에요.
근거 칸이 비어 있는 가정이 많을수록 아직 시장 얘기를 할 단계가 아니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시장 규모 계산은 크게 보이게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어떤 가정 위에 서 있는지 드러내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숫자가 작게 나와도 괜찮고, 중요한 건 그 숫자가 어디서 나왔는지 내가 설명할 수 있느냐는 점이에요.
다음에는 월 2만 원이라는 가정을 실제로 확인해 볼 차례입니다.
운영하시는 분들께 지금 쓰는 도구와 비용을 여쭤보면서 가정을 하나씩 근거로 바꿔 가 보려고 합니다.
남은 질문은 바텀업의 "10퍼센트가 쓴다" 같은 전환 가정을 어떻게 사전에 검증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인데, 이건 인터뷰와 작은 실험을 통해 풀어야 할 숙제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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