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회의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말 중 하나가 "제가 보기엔 이게 더 편한데요"입니다.
저도 많이 했던 말이고, 많이 들은 말이기도 해요.
경험이 쌓인 사람의 감은 분명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감만으로는 서로 다른 감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하기가 정말 어렵더라고요.
오늘은 UX를 데이터로 분석해야 하는 이유를 감과 데이터의 관계, 그리고 설득의 도구라는 관점에서 정리해 봅니다.
먼저 오해가 없도록 말씀드리면, 저는 감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수많은 서비스를 써 보고 만들어 본 사람의 직관은 가설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우리가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메뉴 구조를 이미 알고 있고, 용어를 이미 알고 있어서 처음 보는 사람의 막막함을 잘 상상하지 못합니다.
다른 하나는 사람마다 감이 다르다는 점이에요.
디자이너의 감, 개발자의 감, 대표님의 감이 부딪히면 결국 직급이나 목소리 크기로 결론이 나기 쉽습니다.
데이터는 이 두 문제를 조금 덜어 줍니다.
만드는 사람이 아닌 실제 사용자의 행동을 보여 주고, 여러 사람이 같은 숫자를 보며 이야기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제가 느낀 데이터의 역할을 세 가지로 나눠 볼게요.
첫째,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 줍니다.
화면이 열 개 있는 가입 과정에서 어디서 사람들이 많이 나가는지 모르면, 열 개를 다 고쳐야 할 것 같은 막막함이 생깁니다.
데이터를 보면 세 번째 화면에서 크게 줄어든다는 식으로 범위가 좁혀져요.
둘째, 우선순위를 정해 줍니다.
고치고 싶은 곳은 늘 많은데 개발 자원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영향을 받는 사용자 수와 이탈 정도를 보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설명하기 쉬워집니다.
셋째, 고친 뒤에 좋아졌는지 확인하게 해 줍니다.
개선이 끝났다고 느끼는 것과 실제로 나아진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전후를 비교할 기준이 있어야 다음 개선도 이어 갈 수 있어요.
기획자의 일은 결국 다른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데이터는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게 해 주는 공통 언어가 됩니다.
가정해 보겠습니다.
디자이너가 메인 화면의 큰 배너를 키우자고 하고, 기획자는 검색창을 위로 올리자고 합니다.
서로 "이게 낫다"만 반복하면 끝이 나지 않아요.
이때 "배너 영역의 클릭 비중은 낮고, 검색창을 찾느라 스크롤하는 사용자가 많다"는 데이터가 있으면 논점이 바뀝니다.
누가 맞느냐가 아니라 사용자가 무엇을 하려고 들어왔느냐로 대화가 옮겨 가거든요.
또 하나는 윗선이나 다른 팀을 설득할 때입니다.
"이 화면이 불편해 보입니다"보다 "이 단계에서 사용자의 절반이 이탈합니다"가 훨씬 힘이 있습니다.
다만 이 숫자가 정확한지, 나에게 유리한 숫자만 골라 온 것은 아닌지는 항상 스스로 점검해야 해요.
신뢰를 잃는 가장 빠른 길이 한 번의 부풀린 숫자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현실적인 장면을 떠올려 볼게요.
새로 만든 메뉴 구조가 마음에 들어서 팀에 공유했는데, 한 분이 "이전 구조가 더 익숙했어요"라고 말합니다.
이때 취향의 문제로 받아들이면 기분만 상하고 끝나지만, 새 구조에서 목표 화면까지 가는 클릭 수와 중간 이탈을 같이 보면 이야기가 구체적이 됩니다.
숫자가 말해 주는 것은 승패가 아니라 다음에 고칠 곳이에요.
그래서 저는 데이터를 꺼낼 때 "내 안이 맞다는 증거"가 아니라 "같이 확인해 볼 자료"라고 먼저 말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렇다고 데이터가 만능은 아닙니다.
숫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해 주지만 왜 일어났는지는 잘 말해 주지 않습니다.
가입 이탈이 높다는 사실은 알 수 있어도 사용자가 어떤 부분을 부담스러워했는지는 인터뷰나 관찰 같은 정성 방법이 있어야 이해됩니다.
또 이미 있는 것만 측정된다는 한계도 있어요.
아직 만들지 않은 기능에 대한 반응은 현재의 데이터로는 알 수 없습니다.
새로운 방향을 구상할 때는 감과 상상력이 먼저 나서야 하고, 데이터는 그다음에 그 방향을 검증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정리해 두었습니다.
감은 가설을 만들고, 데이터는 가설을 시험하고, 사용자와의 대화는 이유를 알려 준다고요.
데이터 분석이라고 하면 거창한 도구부터 떠올리기 쉬운데, 시작은 작아도 됩니다.
- 지금 가장 궁금한 질문을 한 문장으로 적습니다. 예를 들어 "가입 화면에서 사람들은 어디서 멈추는가"처럼요.
-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숫자가 이미 있는지 찾아봅니다. 기본 방문 통계만으로도 답이 나오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 숫자를 본 뒤 가설을 한두 개만 세웁니다.
- 가설을 확인할 가장 작은 방법을 고릅니다.
데이터는 기획자의 감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이 더 멀리 가도록 받쳐 주는 발판 같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설득이 필요한 순간에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같이 보기 위해 꺼내는 것이 맞는 사용법 같아요.
남은 질문은 이런 것들입니다.
숫자가 충분하지 않은 초기 서비스에서는 데이터와 감의 비중을 어떻게 나눠야 할까요.
그리고 데이터가 말하는 방향과 서비스가 지향하는 가치가 어긋날 때는 무엇을 우선해야 할까요.
계속 고민하면서 사례를 더 모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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