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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ning · PM/UX · Product

데이터로 고객 여정 지도 그리기

2020. 8. 12. 01:05

 

고객 여정 지도를 처음 그렸을 때는 화이트보드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워크숍이었어요.
다들 열심히 이야기했는데, 끝나고 나니 "이게 정말 사용자의 모습일까?" 하는 의문이 남았습니다.
우리가 상상한 여정과 실제 사용자의 여정이 같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 뒤로는 여정 지도를 그릴 때 데이터를 같이 얹는 방식을 쓰고 있어요.
오늘은 그 과정을 정리해 봅니다.

 

고객 여정 지도는 사용자가 어떤 목표를 이루려고 서비스를 만나는 처음부터 끝까지를 시간 순서로 펼친 그림이에요.
가로축에는 단계, 세로축에는 행동, 생각, 감정, 접점 같은 항목을 놓는 형태가 흔합니다.
서비스 안의 화면뿐 아니라 광고를 보거나 후기를 검색하거나 고객센터에 연락하는 서비스 바깥의 순간도 함께 담을 수 있어요.

이 지도의 가치는 부서마다 따로 보던 조각을 한 장에 모아 준다는 데 있어요.
기획은 가입 화면을, 마케팅은 광고를, 상담팀은 문의 응대를 각자 보지만 사용자는 그 모든 걸 이어서 하나의 경험으로 느끼니까요.

 

저는 여정 지도를 두 단계로 만들어요.
먼저 인터뷰나 관찰, 고객 문의 내용 같은 정성 자료로 뼈대를 세웁니다.
사용자가 어떤 단계를 거치는지, 단계마다 무엇을 기대하고 걱정하는지를 말로 듣는 거예요.
이 뼈대가 있어야 숫자를 어느 단계에 걸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정성 자료를 모을 때는 누구에게 듣는지도 신경 써요.
오래 쓴 사용자의 이야기만 들으면 처음 겪는 어려움이 빠지기 쉬워서, 신규 사용자와 이탈한 사용자도 한두 명은 포함하려고 해요.

그다음 정량 자료로 살을 붙여요.
각 단계에서 몇 명이 다음으로 넘어가는지, 얼마나 걸리는지, 어디서 되돌아가는지를 숫자로 적습니다.
퍼널 분석과 사용자 행동 흐름 데이터가 여기서 쓰여요.
정성에서 "비교하느라 오래 고민한다"는 말을 들었다면, 정량으로는 같은 상품을 여러 번 오가는 패턴이 실제로 많은지 확인하는 식이에요.

두 자료가 서로 어긋나는 순간이 오히려 쓸모가 많아요.
말로는 괜찮다고 했는데 숫자는 이탈이 크다면, 사용자가 말하지 않은 불편이 있다는 신호일 수 있거든요.

 

여정 지도에서 제가 가장 아끼는 줄은 감정 곡선이에요.
단계마다 사용자의 기분이 어떨지 위아래로 선을 그려서, 기대와 만족, 불안과 짜증이 어디서 생기는지 보는 거예요.

감정은 숫자로 바로 나오지 않아서 추정이 섞여요.
그래서 근거를 같이 적어 둡니다.
인터뷰에서 나온 표현, 문의 내용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 같은 구간에서 반복해서 되돌아가는 행동 같은 것들이에요.
곡선이 바닥으로 내려가는 지점은 이탈이 많은 지점과 겹치는 경우가 많고, 그 지점이 개선 후보가 됩니다.

반대로 곡선이 높이 올라가는 지점도 중요해요.
사용자가 기뻐하는 순간이 어디인지 알아야 개선하다가 그 좋은 경험을 해치지 않으니까요.

 

곡선이 내려가는 지점마다 "왜"를 한 줄씩 적고 아이디어를 붙여요.
다 고칠 수는 없으니 우선순위가 필요하겠죠.
저는 사용자 고통의 크기, 해당 단계를 지나는 사람의 수, 고치는 데 드는 노력 세 가지로 대략 점수를 매겨요.
엄밀한 계산은 아니고, 팀이 같은 기준으로 대화하게 만드는 용도예요.
한 번에 모든 구간을 고치려 하기보다 감정이 가장 낮은 한두 구간만 먼저 손보는 편이 효과를 확인하기 쉬워요.

개선 아이디어는 바로 개발로 넘기지 말고 가설 형태로 남기는 게 좋아요.
"이 단계에서 가격 정보를 먼저 보여 주면 불안이 줄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비율이 늘 것이다" 같은 식으로요.

 

가상의 숙소 예약 서비스를 놓고 가정해 볼게요.
단계는 여행 계획, 숙소 탐색, 비교와 결정, 예약과 결제, 이용 전 안내, 이용 후 후기로 나눠 봅니다.
인터뷰에서 "비교하는 단계가 제일 피곤하다", "결제 직전에 취소 규정이 헷갈려서 한 번 더 확인한다"는 말이 나왔다고 해요.
데이터로는 비교 단계에서 상세 페이지를 여러 번 오가는 세션이 많고, 결제 단계 직전에 취소 규정 영역을 여는 비율이 높다고 가정합니다.
감정 곡선은 비교와 결제 직전에서 가장 낮게 그려지겠죠.
개선 아이디어로는 비교 화면에서 숙소를 나란히 놓고 보는 기능, 취소 규정을 결제 전에 요약해 보여 주는 문구가 나올 수 있어요.
이렇게 지도를 놓고 보면 결제 화면 하나만 고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비교 단계부터 결제 직전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같이 봐야 한다는 점도 드러나요.
이 숫자와 말은 모두 지어낸 가정이고, 실제로는 서비스마다 다르게 나올 거예요.

 

여정 지도는 그리는 순간보다 쓰는 순간에 가치가 생겨요.
한 번 그려서 벽에 붙여 두면 금세 낡아 버리니까, 분기마다 데이터를 갱신하는 정도의 관리는 필요하다고 느껴요.
또 한 장의 지도에 모든 사용자를 담으려고 하면 평균의 얼굴만 남기 쉬워서, 사용자 유형별로 나눠 그리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지도를 팀원들이 실제로 읽게 하려면 한 장에 담는 항목을 줄이는 게 좋더라고요.
단계, 행동, 감정, 기회 네 줄 정도로 시작해서 필요할 때 늘려 가는 편이 부담이 적었어요.

감정을 어디까지 추정해도 되는지도 남은 질문이에요.
다음에는 설문이나 짧은 인터뷰로 감정 점수를 직접 받아 보는 방법을 시도해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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