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을 할 때 우리는 사용자가 이렇게 움직일 거라고 흐름도를 그립니다.
그런데 실제 데이터에서 경로를 열어 보면, 그린 대로 움직이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고 예상하지 못한 길로 다니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오늘은 사용자 행동 흐름, 즉 경로를 분석하는 방법과 예상 밖 경로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행동 흐름 분석은 사용자가 어떤 페이지나 화면에서 시작해서 어디로 이동했는지를 단계별로 보여 줍니다.
첫 화면에서 두 번째로 간 곳, 거기서 세 번째로 간 곳이 갈래로 펼쳐지는 모습이에요.
퍼널 분석이 "정해진 단계를 몇 퍼센트가 통과했는가"를 본다면, 경로 분석은 "사람들이 실제로 어디로 갔는가"를 봅니다.
퍼널이 우리가 정한 길의 성적표라면, 경로는 사람들이 낸 길의 지도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경로 데이터는 양이 많아서 처음에 막막합니다.
저는 이렇게 범위를 좁혀서 시작해요.
먼저 시작점을 정합니다.
모든 방문자를 보는 대신 첫 화면에서 시작한 사람이나 특정 광고를 타고 들어온 사람처럼 하나의 시작점을 골라요.
다음으로 질문을 정합니다.
"가입하려던 사람들은 어디를 거치는가"처럼 목표와 연결된 질문이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단계를 서너 개로 제한합니다.
너무 깊게 들어가면 갈래가 폭발해서 읽을 수 없어요.
세 단계 정도만 보아도 큰 흐름은 대체로 드러납니다.
경로 분석의 재미는 예상 밖의 길을 만났을 때 있습니다.
가상의 온라인 서점을 예로 들어 볼게요.
우리가 설계한 흐름은 "메인 화면, 도서 검색, 상세 페이지, 장바구니, 결제"입니다.
그런데 경로를 열어 보니 상세 페이지에서 곧바로 고객센터의 반품 안내 페이지로 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숫자와 상황은 모두 지어낸 예시예요.
이 발견은 여러 가설을 낳습니다.
구매 전에 반품이 가능한지 먼저 확인하려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세 페이지 안에 반품 정책 요약을 두면 이동 없이 불안을 해소할 수 있겠죠.
혹은 이미 산 사람이 상세 페이지를 다시 열어 반품 방법을 찾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주문 내역 화면에 반품 진입점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같은 경로가 서로 다른 사람의 서로 다른 목적에서 나왔을 수 있어서, 사용자를 한 묶음으로 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규와 기존 사용자를 나누어 같은 경로를 다시 보면 이야기가 선명해져요.
또 다른 예상 밖 경로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검색 결과에서 상세 페이지로 가지 않고 검색 조건만 계속 바꾸는 사람들이 많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들은 원하는 책을 찾지 못해서 조건을 바꿔 가며 헤매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요.
그렇다면 검색어 추천이나 필터 구성, 결과가 없을 때의 안내 문구를 점검해 볼 이유가 생깁니다.
이처럼 예상 밖 경로는 불편이 숨어 있는 곳을 알려 주는 신호등 역할을 해 줍니다.
첫째, 많이 간 길이 좋은 길은 아닙니다.
목적지를 찾지 못해 헤매다 보니 사람들이 몰리는 경우도 있어요.
이동 뒤에 목표 행동으로 이어졌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둘째, 뒤로 가기와 새로 고침은 경로에서 해석이 어렵습니다.
같은 화면으로 돌아오는 경로가 많다면 헷갈리고 있다는 신호일 가능성이 있지만, 단순히 비교하려고 오간 것일 수도 있어요.
셋째, 경로가 끊긴 곳이 항상 이탈은 아닙니다.
다른 창에서 이어서 볼 수도 있고, 나중에 다시 올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여기서 끝난 사람이 많다"는 사실만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으려 합니다.
넷째, 경로를 나누는 기준을 정해 두어야 합니다.
같은 상세 페이지라도 상품마다 주소가 다르면 각각 다른 화면으로 잡혀서 경로가 잘게 쪼개져요.
상세 페이지, 목록 페이지, 결제 페이지처럼 화면의 종류로 묶어서 보면 큰 흐름이 훨씬 잘 읽힙니다.
데이터를 정리할 때 이런 묶음 규칙을 미리 정해 두면 분석 담당자와 소통하기도 쉬워져요.
경로에서 발견한 내용은 바로 화면을 바꾸기보다 가설 카드로 적어 둡니다.
무엇을 보았고, 왜 그런 것 같고, 어떻게 확인할지를 한 장에 적는 거예요.
확인 방법으로는 인터뷰나 간단한 설문이 좋았습니다.
숫자로 본 경로의 이유를 사용자에게 직접 묻는 것이 가장 빠르게 가설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느꼈어요.
가설이 어느 정도 단단해지면 작은 변경을 먼저 시도하고, 같은 경로를 다시 열어 변화가 있는지 봅니다.
경로 분석은 우리가 그린 지도와 사용자가 걸은 길이 얼마나 다른지 알려 주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그 차이가 곧 개선의 단서가 되니까, 예상이 틀렸다는 것 자체를 반가워하려고 해요.
아직 풀지 못한 질문도 있습니다.
앱과 웹을 오가는 사용자의 경로는 어떻게 하나로 이어 볼 수 있을까요.
그리고 페이지 수가 많은 서비스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경로를 묶어야 읽기 좋아질까요.
이 부분은 데이터를 직접 열어 보면서 더 연습해 보려고 합니다.
경로 그림이 복잡해서 놀랐다면, 그건 분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원래 그만큼 다양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그 복잡함 속에서 가장 굵은 줄기 하나와 가장 의외인 갈래 하나만 건져도 한 번의 분석에서 얻는 수확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Planning · PM > UX · Product'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웹사이트를 만들 때 사용자 관점에서 점검할 것들 (0) | 2020.08.12 |
|---|---|
| 왜 UX를 데이터로 분석해야 하나 (0) | 2020.08.12 |
| 마우스 움직임 데이터로 알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0) | 2020.08.12 |
| 데이터로 고객 여정 지도 그리기 (0) | 2020.08.12 |
| 도널드 노먼의 디자인 원칙, 기획자가 쓰는 법 (0) | 2020.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