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넘게 "기획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일하다가, 올해 초에 "PO(Product Owner)"라는 직함으로 바뀌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명함 문구 하나 바뀐 것뿐인데, 실제로 해보니 일하는 방식이 꽤 많이 달라지더라고요.
오늘은 이 변화를 겪으면서 느낀 것들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기획자로 일할 때는 "이 화면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집중했습니다.
디자이너가 시안을 주면 검토하고, 개발자가 구현하면 QA하고, 이 정도가 제 하루 일이었어요.
PO로 넘어가면서는 "이 기능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 "이걸 안 만들면 어떤 지표가 나빠지는가"를 먼저 설명해야 하는 자리가 됐습니다.
처음 몇 주는 백로그 우선순위 회의에서 말을 거의 못 했어요.
"이거 왜 3번째 순위예요?"라는 질문에 데이터로 답을 못 하고 "일단 중요해 보여서요"라고 얼버무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기획자 시절엔 요청받은 걸 최대한 다 반영하려고 했습니다.
영업팀이 원하는 기능, 대표님이 지나가면서 던진 아이디어, 고객 문의로 들어온 요청까지 다 백로그에 넣어놨어요.
PO가 되고 나서는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이번 분기 목표와 안 맞는 요청은 "지금은 안 합니다"라고 말하는 게 제 일이 되어 있었어요.
처음엔 이 말을 하는 게 너무 어려웠습니다.
영업팀장님한테 "그 기능은 이번 분기 로드맵에 없습니다"라고 말했다가 며칠 동안 냉랭한 분위기를 느낀 적도 있고요.
그런데 몇 달 지나고 나니, 명확하게 "아니오"라고 말해주는 게 오히려 팀 전체의 신뢰를 얻는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애매하게 "검토해볼게요"라고 넘겼던 요청들이 나중에 더 큰 오해와 실망으로 돌아온다는 걸 여러 번 겪었거든요.
기획자일 때는 "사용자가 불편해할 것 같다"는 감으로도 어느 정도 일이 됐습니다.
PO가 되면서는 그 감을 데이터로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훨씬 많아졌어요.
전환율, 리텐션, 이탈 구간 같은 지표를 매주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고, 회의에서도 "제 생각에는" 대신 "지난주 데이터를 보면"으로 문장을 시작하는 빈도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숫자 보는 게 재미없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숫자가 안 맞으면 뭔가 찜찜해서 다시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대시보드를 매일 아침 커피 마시면서 훑어보는 게 어느새 루틴이 됐습니다.
재미있는 건, 직함이 바뀌니까 같은 말을 해도 반응이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기획자일 때 "이 기능 우선순위 낮춰야 할 것 같아요"라고 하면 "그건 팀장님이 결정하실 부분 아니에요?"라는 반응이 종종 있었어요.
PO가 되고 나서 같은 말을 하니까 별다른 이견 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직함이 주는 권한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체감하면서, 그만큼 더 신중하게 말해야 한다는 부담도 같이 생겼습니다.
이 변화가 좋았냐고 물으면, 아직은 반반입니다.
책임이 늘어난 만큼 스트레스도 늘었고, 예전처럼 화면 하나에 집중해서 디테일을 파고드는 재미는 조금 줄었어요.
그래도 "왜"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느낌은 나쁘지 않습니다.
내년엔 이 역할에 좀 더 익숙해져서, 얼버무리는 대답 대신 명확한 근거로 말하는 PO가 되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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