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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의 즉흥과 합주에서 배우는 협업

2016. 8. 15. 16:01

 

재즈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악보 없이 즉흥으로 연주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저렇게 합이 맞을까.
알아보니 재즈의 즉흥은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합의된 틀 안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재즈 전문가가 아니라서 음악적으로 깊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구조가 팀 협업과 놀랄 만큼 닮아 있어서 비유로 정리해 보려고 해요.

 

재즈 연주자들은 곡의 기본 진행과 박자를 함께 정해 두고 그 안에서 각자 즉흥으로 소리를 얹는다고 해요.
틀이 없다면 즉흥은 소음이 되고, 틀만 있다면 연주는 기계적으로 들릴 거예요.

팀 작업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목표, 일정, 역할 분담 같은 최소한의 틀은 분명해야 하고, 그 안에서 방법은 각자에게 맡기는 편이 좋아요.
반대로 모든 과정을 세세히 정해 두면 담당자가 판단할 여지가 없어서 수동적으로 변하더라고요.
저는 정해야 할 것과 맡겨야 할 것을 구분해서 적어 두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가정해서 예를 들어 볼게요.
새 이벤트 페이지를 만드는 작은 팀이 있다고 합시다.
정해 둘 것은 다음 주 금요일까지 공개한다는 일정과 참여 버튼이 한 번에 눈에 띄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맡길 것은 그 버튼을 어떤 색과 문구로 보여 줄지, 어떤 순서로 만들지에 대한 선택이에요.
틀이 분명하니 디자이너가 새로운 안을 내도 팀이 어디까지 받아들일지 판단하기 쉬워집니다.
이 틀이 없었다면 시안이 나올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논쟁을 해야 했을 거예요.
틀은 자유를 가두는 울타리라기보다 마음 놓고 시도하게 해 주는 바닥에 가깝다고 느낍니다.

 

재즈에서 즉흥을 잘하는 사람은 자기 소리만 크게 내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연주자의 소리를 잘 듣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상대가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 들어야 거기에 맞춰 받아 칠 수도, 일부러 반대로 갈 수도 있으니까요.

회의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자주 있어요.
내 차례를 기다리며 할 말을 준비하느라 앞사람 이야기를 흘려듣는 일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같은 주제가 다시 반복되거나 서로 엇갈린 이야기만 오가게 되더라고요.
요즘은 말하기 전에 방금 나온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되짚어 보고 시작하려고 해요.
이렇게 하면 내 의견이 앞 이야기에 대한 응답이 되어서 대화가 이어집니다.

가정 장면을 하나 그려 볼게요.
회의에서 개발자가 이 조건은 구현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곧바로 반박하거나 대안을 내밀기보다 어떤 부분이 어려운지 한 번 되묻고 정리해 줍니다.
대화를 이어 가 보면 어려운 것은 조건 전체가 아니라 특정 예외 하나인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 예외만 따로 떼어 내면 나머지는 그대로 진행할 수 있어서 서로 한 걸음씩 양보하지 않아도 됩니다.

 

재즈 합주에서는 한 사람이 솔로를 하는 동안 나머지가 반주로 받쳐 주고, 잠시 뒤에 역할을 바꾼다고 해요.
언제나 같은 사람이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며 주인공이 됩니다.

팀에서도 프로젝트 국면마다 앞에 서는 사람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구 정리 단계에서는 기획자가, 화면을 잡는 단계에서는 디자이너가, 구현 단계에서는 개발자가 중심에 서는 것이 자연스러워요.
다른 사람이 앞에 있을 때 반주로 물러나 받쳐 주는 태도가 팀의 안정감을 만든다고 느낍니다.
내가 앞에 있어야만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

가정해서 새 기능 출시 전 마지막 한 주를 떠올려 봅시다.
막바지 검수 기간에는 개발자가 앞에 서서 오류를 잡고, 기획자는 그 옆에서 우선순위 판단과 문서 정리로 받쳐 줍니다.
디자이너는 수정 요청이 쏟아져도 흐름이 깨지지 않게 시안을 정리해 주고요.
이렇게 서로 받쳐 주는 한 주를 지나고 나면 팀의 신뢰가 한 뼘 자라 있더라고요.

 

재즈 연주자들 사이에서는 틀린 음도 다음 음으로 이어 붙이면 새로운 표현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실수를 멈춰서 사과하는 대신 흐름 안에서 받아 주는 것이지요.

일하다 보면 계획이 어긋나는 일이 계속 생깁니다.
일정이 밀리거나 기능이 빠지는 일에서 책임을 따지는 데 시간을 쓰면 정작 다음 대응이 늦어져요.
먼저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다음 한 수를 같이 찾고, 원인 점검은 나중에 차분히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요.
이런 문화가 있는 팀에서는 사람들이 실수를 숨기지 않고 일찍 꺼내 놓더라고요.
회고 시간에도 누가 잘못했는지를 묻기보다 어떤 틈이 있었는지를 묻는 질문으로 바꿔 보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틈이라는 말에는 사람이 아니라 방식을 고친다는 뜻이 담겨 있어서 마음이 한결 편해져요.

 

합주가 잘 안 되는 때를 떠올려 봤습니다.

  • 한 사람이 계속 소리를 키우며 혼자 앞서 나갈 때입니다.
  • 서로의 소리를 듣지 않고 각자 악보만 볼 때입니다.
  • 틀이 흐릿해서 어디에서 합류해야 할지 아무도 모를 때입니다.

팀에서 보이는 모습과 거의 같아서 웃음이 나왔어요.
점검할 때는 이 세 가지를 체크리스트처럼 떠올려 보면 도움이 됩니다.

 

재즈에서 배운 협업의 핵심은 틀을 분명히 하고, 먼저 듣고, 돌아가며 앞에 서고, 실수를 받아 이어 가는 것이었어요.
아직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잘하지는 못하고 오늘은 듣기 하나만이라도 해 보자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궁금한 점은 틀을 어디까지 촘촘히 정하는 것이 적당한가 하는 부분이에요.


팀의 경험과 신뢰 수준에 따라 달라질 것 같은데 그 기준을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요.
다음 프로젝트에서 틀의 촘촘함을 조금씩 바꿔 보며 확인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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