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코드를 AI가 대신 짜주는 시대에 기획자는 뭘 하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듣습니다.
저도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던졌어요.
저는 서비스 기획과 PM 일을 해왔고, 지금은 예약 시스템 기획을 하면서 AI 공부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정도의 경험으로 업계 전체를 전망할 수는 없어서, 이 글은 예측보다는 제가 직접 느낀 변화를 중심으로 정리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틀릴 수 있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 시작할게요.
가장 먼저 느낀 변화는 만들어보는 일의 문턱이 낮아졌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아이디어가 있어도 화면 하나 보여주려면 디자이너와 개발자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요즘은 코딩 도구에게 설명하고 작은 동작 예제를 만들어서, 말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흐름을 바로 눈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저처럼 코드를 직접 쓰지 못하는 기획자도 "이런 느낌"을 구체적인 결과물로 보여줄 수 있게 된 거예요.
개발자 쪽에서도 반복적인 부분을 도구가 도와주면서 같은 시간에 해볼 수 있는 시도가 늘어난 것 같습니다.
물론 도구마다 잘하는 일과 못하는 일이 다르고, 서비스의 안정성이나 보안 같은 문제는 여전히 사람이 꼼꼼히 봐야 합니다.
하지만 "만들 수 있느냐"가 병목이던 순간이 "무엇을 만들어야 하느냐"가 병목인 순간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느낌은 분명합니다.
만드는 비용이 낮아지면 뭐가 달라질까요.
잘못된 것을 만드는 비용도 같이 낮아집니다.
그래서 오히려 잘못된 문제를 푸는 일이 더 쉽게, 더 빠르게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가상의 미용실 예약 서비스에서 "예약 취소율이 높다"는 문제가 보였다고 해보겠습니다.
도구가 빠르면 곧바로 "취소 시 위약금 기능"이나 "리마인드 알림 기능"을 만들어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취소가 왜 생기는지를 먼저 이해하지 않으면 엉뚱한 기능이 빨리 만들어질 뿐입니다.
실제 원인이 "손님이 일정이 바뀌었는데 변경 방법을 몰라서 그냥 취소한다"일 수도 있고, "운영자가 직접 취소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일 수도 있습니다.
둘은 풀어야 하는 방향이 완전히 달라요.
저는 이게 앞으로 기획의 가장 중요한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상 뒤에 있는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를 묻고, 그 문제가 풀렸다는 걸 무엇으로 판단할지 정하는 일입니다.
이건 창업을 준비하던 시기에 아이템을 찾으며 "기술에서 출발하지 말고 문제에서 출발하라"는 이야기를 곱씹었던 기억과도 닿아 있어요.
두 번째로 비중이 커진다고 느끼는 건 우선순위입니다.
만들 수 있는 것이 많아지면 "무엇을 먼저 할까"가 더 어려워집니다.
옵션이 많은 상태에서 고르는 일이 오히려 힘들잖아요.
예약 시스템으로 치면 알림 커스터마이징, 요금제 세분화, 권한 세부 설정, 챗봇 예약 같은 후보가 한꺼번에 있을 때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빠르게 만들 수 있다고 모두 하는 것은 아니고, 지금 운영하시는 분들이 가장 불편해하는 것부터 정해야 해요.
그 판단 기준을 세우려면 현장 이야기를 듣고, 비용과 효과를 어림해보고, 하지 않을 것을 고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는 품질 기준입니다.
AI가 만든 결과가 "그럴듯하게 동작"하는 것과 "서비스에 내놓아도 되는 수준"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예약 가능 시간 계산 같은 기능은 영업시간, 휴무, 정리 시간, 동시 요청 같은 예외까지 맞아야 합니다.
이때 어떤 예외까지를 필수로 볼지, 어떤 상황에서 틀리면 절대 안 되는지 정하는 일이 기획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기준이 없으면 도구가 만든 결과를 평가할 방법도 없어집니다.
AI 기능이 서비스 안에 들어가는 경우에는 더 그렇습니다.
어떤 답변이 좋은 답변인지, 틀렸을 때 얼마나 위험한지, 어디서 사람이 확인해야 하는지를 정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평가 기준을 만드는 일은 코드를 몰라도 할 수 있고, 오히려 서비스와 사용자를 아는 사람이 더 잘할 수 있다고 믿어요.
지금까지 해온 일에 비추어 보면, 이런 변화는 이미 조금씩 느껴지고 있습니다.
예약 시스템 기획을 하면서는 정책과 예외를 얼마나 촘촘하게 정리했는가가 결과를 좌우했습니다.
도구가 아무리 빨라도 "취소 마감 시간이 정확히 언제인지" 같은 질문에 답이 없으면 개발은 멈춥니다.
정책을 명확하게 쓰는 일은 AI가 읽는 문서든 사람이 읽는 문서든 똑같이 중요했어요.
AI 공부를 하면서는 모델에게 시키는 일과 사람이 판단해야 하는 일의 경계를 계속 배웠습니다.
초안을 만들거나 예외 케이스를 늘려보는 일은 잘 도와주지만, 무엇이 중요한지 결정하는 일은 도와주기 어렵더라고요.
창업을 준비하며 공부했던 경험도 의외로 쓸모가 있었습니다.
작게 가설을 세우고 확인하는 방식, 고객 입장에서 불편을 묻는 습관 같은 것들이 도구가 빨라진 지금 더 자주 필요해졌어요.
그렇다고 기획자의 자리가 안전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문서를 정리하고 요구사항을 나열하는 일 같은 부분은 도구가 꽤 잘하게 되었고, 앞으로 더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리해주는 사람"으로만 존재한다면 역할이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은 세 가지입니다.
문제를 정의하는 질문을 더 잘하는 것, 우선순위와 품질 기준을 근거와 함께 말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직접 작게 만들어서 확인하는 습관을 갖는 것입니다.
물론 이 판단이 얼마나 맞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몇 년 뒤에 이 글을 다시 열어보면 "너무 낙관적이었네" 혹은 "너무 겁먹었네" 하고 웃게 될지도 몰라요.
남은 질문은 이런 것들입니다.
도구가 더 자율적으로 일하게 되면 기획자가 "맡기는 범위"를 정하는 일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그리고 한 사람이 문제 정의부터 작은 구현까지 이어서 해보는 방식이 일반적이 되면, 기획자와 개발자의 경계는 어디에 놓일까요.
저는 이 질문들을 붙잡고, 예약 서비스 기획과 AI 공부를 계속 이어가며 천천히 답을 찾아가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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