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항상 다이어리 앱을 켜고 그 해를 되짚어보는 버릇이 있는데, 이번 해는 유독 오래 붙잡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올해 뭐 했지"가 아니라 "나는 앞으로 어떤 PM이 되고 싶은가"를 다시 물어보게 됐거든요.
계기는 별거 아니었어요.
후배 기획자가 "선배는 나중에 어떤 커리어를 그리고 계세요?"라고 툭 물어봤는데, 저 스스로도 한동안 그 질문에 답을 못 했습니다.
왜 다시 정리해야 했는지
돌이켜보면 지난 몇 년은 그냥 눈앞의 프로젝트를 쳐내는 데 급급했던 시간이었어요.
스프린트 하나 끝나면 다음 스프린트, 프로젝트 하나 끝나면 다음 프로젝트.
중간에 몇 번은 "이 방향이 맞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걸 진지하게 붙잡고 앉아본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AI 관련 프로젝트를 몇 개 거치면서 제 업무 방식 자체가 많이 바뀌었는데, 그 변화 속도에 비해 제 커리어 계획은 5년 전 생각에 멈춰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게 좀 부끄러웠습니다.
지난 시간을 되짚어보니
처음 PM 일을 시작했을 때는 그냥 "기능을 잘 정의하고 잘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스프린트 리드하는 법, PRD 쓰는 법, 우선순위 정하는 법 - 이런 걸 하나씩 몸에 익히는 게 목표였습니다.
그 다음 몇 년은 챗봇, RAG, AI 에이전트 같은 새로운 기술이 쏟아지면서 그걸 서비스에 붙이는 역할을 주로 했고요.
지금 와서 정리해보니, 저는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그걸 우리 서비스에 어떻게 붙일지 판단하는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왔더라고요.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여러 프로젝트를 거치면서 그렇게 굳어진 것 같습니다.
나쁘지 않은 방향이었다고 생각은 하는데, 이걸 앞으로도 계속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둬야 하는지는 다시 생각해봐야 했어요.
앞으로는 조금 다른 걸 해보고 싶습니다
이번에 정리하면서 두 가지를 새로 목표로 잡았습니다.
하나는 "기술을 붙이는 사람"에서 "기술을 다루는 팀을 만드는 사람"으로 조금씩 옮겨가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제가 직접 기술 트렌드를 파악하고 판단을 내리는 역할이었는데, 앞으로는 후배들이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같이 하고 싶어졌습니다.
실제로 올해부터 사내에서 신입 기획자 온보딩 자료를 만들면서, 제가 겪었던 실패들을 정리해서 넘겨주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어요.
다른 하나는 글쓰기입니다.
이 블로그를 몇 년째 띄엄띄엄 써오면서 느낀 건데, 제가 겪은 일을 글로 정리하는 과정 자체가 생각을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회의 중에는 미처 정리 못 했던 생각이, 글로 옮기면서 뒤늦게 명확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조금 더 규칙적으로,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짧게라도 기록을 남기는 습관을 만들어보려고 해요.
결론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이게 맞는 방향인가"라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습니다.
명확한 결론을 내리고 싶어서 시작한 정리였는데, 막상 정리하고 보니 오히려 질문이 더 늘어난 느낌이에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5년 전에는 답을 몰라서 불안했는데, 지금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다고 느껴지거든요.
1년 후에 이 글을 다시 읽으면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은데, 그때도 이렇게 한 번씩 멈춰서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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