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올해를 돌아보니, 지난 몇 년 중에 가장 많이 배우고 가장 많이 헤맸던 해였던 것 같습니다.
연초에는 ChatGPT를 재미로 써보는 정도였는데, 연말이 되니 팀의 로드맵 절반 이상이 AI 관련 프로젝트로 채워져 있었어요.
이번 글은 정리보다는 그냥 개인적인 소감을 담은 결산입니다.
연초의 저와 연말의 저
1월의 저는 "이거 그냥 유행 아니야"라는 생각을 은근히 갖고 있었습니다.
몇 번의 유행성 기술 흐름을 지나오면서 생긴 방어적인 태도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3월쯌 사내 문서 검색 프로젝트를 직접 리드하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건 유행이 아니라, 제가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하는 변화라는 걸 그때 체감했어요.
가장 많이 헤맸던 시기
여름쯤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동시에 두 개의 AI 관련 프로젝트를 맡고 있었는데,
각각 요구하는 지식이 달라서 매일 새로운 걸 배우는 느낌이었어요.
어떤 날은 프롬프트 설계를, 어떤 날은 비용 계산을, 어떤 날은 리스크 검토를 하다 보니 스스로 "내가 지금 뭘 전문으로 하는 사람인지"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그때 팀 리더가 해준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요.
"지금은 다 헤매는 시기니까, 완벽하게 아는 것보다 빨리 시도하고 고치는 게 낫다."
이 말 덕분에 완벽주의를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실패
상담 챗봇 고도화 프로젝트에서 초반에 라우팅 로직을 잘못 설계해서, 두 달 가까이 작업한 걸 거의 다시 짜야 했던 일이 가장 크게 남습니다.
그때는 정말 속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 실패 덕분에 하이브리드 구조에 대한 감각을 제대로 익힐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실패를 아름답게 포장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 실패가 헛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가장 잘한 선택
돌아보면 가장 잘한 선택은, 모든 프로젝트에 AI를 욱여넣지 않은 거였습니다.
FAQ 검색 기능에 LLM을 붙였다가 롤백한 경험 이후로, "이게 정말 AI가 필요한 문제인가"를 먼저 묻는 습관이 생겼어요.
이 습관 덕분에 몇 개의 무리한 프로젝트를 초기에 접을 수 있었고, 대신 정말 필요한 곳에 리소스를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팀에게 배운 것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팀 전체가 같이 헤매면서 배우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도 올해 크게 느꼈습니다.
매주 진행한 "이번 주에 겪은 AI 관련 삽질 공유"는 처음엔 가벼운 시도였는데, 연말이 되어보니 팀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됐어요.
누군가의 실수가 다른 사람의 시간을 아껴주는 걸 여러 번 봤습니다.
숫자로 돌아본 한 해
감상만 남기기엔 아쉬워서 몇 가지 숫자도 같이 정리해봤습니다.
올해 팀에서 검토한 AI 관련 프로젝트는 총 6개였고, 그중 실제로 서비스에 반영된 건 2개, 파일럿까지 갔다가 접은 건 2개, 아이디어 단계에서 멈춘 건 2개였어요.
성공률로 보면 절반도 안 되는 셈인데, 이상하게 이 숫자를 보고 실망스럽지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접어야 할 프로젝트를 초기에 접을 수 있었다는 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느껴졌어요.
매주 진행한 삽질 공유 세션은 연말까지 총 42회 진행됐고, 누적 발표 건수는 130건이 넘었습니다.
이 숫자들을 정리해보고 나니, 한 해 동안 팀이 실제로 얼마나 많이 시도하고 부딪혔는지가 훨씬 실감 나게 다가왔어요.
가장 많이 받은 질문 하나
올해 여러 자리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그래서 기획자는 앞으로도 필요한가요"였습니다.
지인들 모임에서도, 사내 다른 팀과의 자리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꼭 한 번씩 나왔어요.
처음엔 이 질문에 방어적으로 답했던 것 같은데, 한 해를 겪고 나서는 조금 다르게 답하게 됐습니다.
AI가 초안을 대신 써주고 데이터를 대신 정리해줘도, "이 문제를 왜 지금 풀어야 하는가"와 "이걸 풀면 정말 사용자에게 의미가 있는가"를 판단하는 사람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 판단을 잘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 질문을 받으면 "필요는 하지만, 예전과 똑같은 방식으로는 아니다"라고 답하고 있어요.
내년에 대한 생각
내년엔 지금보다 더 빠르게 변화할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 솔직히 약간의 부담도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를 이렇게 헤매면서 지나오고 보니, 완벽하게 준비하고 시작하는 것보다 계속 시도하고 고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1년 전의 저에게 지금의 변화를 설명해줘도 잘 안 믿었을 것 같은데, 1년 뒤의 저는 지금을 어떻게 돌아볼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올 한 해 저와 같이 헤매준 팀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며, 내년에도 비슷한 마음으로 하나씩 정리해서 공유해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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