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봇을 기획하면서 가장 뒤로 밀리기 쉬운 작업이 페르소나 설계입니다.
"일단 답변이 잘 나오게만 하자"가 우선이 되기 쉬운데, 저희도 처음엔 그렇게 접근했다가 나중에 크게 후회했어요.
페르소나 없이 만든 챗봇의 말투가 화면마다 미묘하게 달라져서, 사용자 입장에서는 마치 서로 다른 사람이 응대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거죠.
초기 버전에서 챗봇은 어떤 답변에서는 "죄송하지만 확인이 어렵습니다"라고 하고, 다른 답변에서는 "그건 안 돼요!"라고 했습니다.
답변 스크립트를 여러 사람이 나눠서 작성했기 때문이었어요.
사용자 피드백 중에 "챗봇이 갑자기 반말로 답해서 놀랐다"는 항의가 몇 건 들어왔는데, 확인해보니 한 담당자가 급하게 스크립트를 추가하면서 톤을 못 맞춘 거였습니다.
이 문제를 겪고 나서야 저희는 "이 챗봇은 누구인가"부터 정의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람으로 치면 이름, 성격, 말투, 응대 방식까지 하나의 캐릭터로 그려야 스크립트를 쓰는 사람이 몇 명이든 일관성이 유지된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저희가 페르소나 설계시 정리한 항목은 크게 네 가지였습니다.
- 첫째, 기본 성격
저희 챗봇은 "친절하지만 능글맞지 않은, 담백한 안내자"로 정했어요.
지나치게 애교 있는 말투는 실제 상담 상황(환불, 컴플레인)에서 오히려 신뢰를 깎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 둘째, 어미와 존댓말 수준
"~해요"체를 기본으로 하되, 공식적인 안내(정책, 약관 관련)에는 "~습니다"체를 쓰기로 규칙을 정했습니다.
이 부분이 실제로는 가장 많이 어겨지는 규칙이었는데, 스크립트 검수 단계에서 매번 체크리스트로 확인하도록 만들었어요. - 셋째, 실패 상황에서의 태도
답을 못 찾았을 때 "잘 모르겠어요"라고만 하면 무책임하게 느껴지고, 지나치게 사과만 반복하면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저희는 "이 부분은 제가 바로 확인해드리기 어려운데, 상담원 연결해드릴까요?"처럼 대안을 항상 같이 제시하는 걸 원칙으로 정했습니다. - 넷째, 유머와 이모지 사용 범위
저희는 이모지를 아예 쓰지 않기로 정했어요.
초반에 몇 개 넣어봤는데, 컴플레인 상황에서 이모지가 붙은 답변이 오히려 사용자를 더 화나게 만든다는 피드백을 받고 전면 제외했습니다.
이 네 가지를 정리한 뒤, 저희는 "챗봇 톤앤매너 가이드"라는 한 페이지짜리 문서를 만들었습니다.
좋은 예시와 나쁜 예시를 나란히 적어두는 방식이 제일 효과적이었어요.
"이렇게 쓰세요" 열 개보다 "이런 문장을 이렇게 고치세요"라는 비교 예시 다섯 개가 스크립트 작성자들에게 훨씬 잘 전달됐습니다.
이 가이드를 만든 이후로 새로운 스크립트를 검수할 때 "이거 톤 가이드에 맞나요?"라는 질문 한 마디로 체크가 가능해졌고, 톤 불일치로 인한 사용자 항의도 크게 줄었습니다.
페르소나를 정했다고 끝난 게 아니었어요.
운영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계속 나왔습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챗봇에게 화를 내는 경우, 저희가 정한 "담백한 안내자" 톤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맞는지 다시 논의가 필요했어요.
결국 사용자가 격하게 항의하는 패턴이 감지되면 톤을 조금 더 낮추고, 바로 상담원 연결을 우선 제시하도록 예외 규칙을 추가했습니다.
페르소나 설계는 챗봇에 "성격"을 입히는 작업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나눠서 만들어도 하나의 일관된 경험을 유지하기 위한 실용적인 장치라는 걸 이 프로젝트를 통해 배웠습니다.
다음에 새로운 챗봇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 답변 스크립트를 쓰기 전에 페르소나 문서부터 먼저 만드는 걸 이제는 당연한 순서로 여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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