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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봇 UX 설계 시 체크 포인트

2020. 7. 7. 21:41

 

챗봇을 기획하다 보면 "대화니까 자연스럽게 만들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만들어서 사용자에게 보여 주면, 자연스러운 대화보다 훨씬 기본적인 곳에서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챗봇은 말을 거는 방식이어서 화면 UI와는 다른 종류의 설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제가 챗봇 기획을 하면서 매번 돌아가 확인하게 되는 체크 포인트를 첫 인사, 범위 안내, 버튼과 자유 입력, 오류 처리의 네 가지로 정리해 봅니다.

 

사용자가 챗봇을 처음 열었을 때 보는 첫 메시지는 앱의 첫 화면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사용자는 이 챗봇이 어떤 존재인지, 나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를 짐작해요.

첫 인사에는 세 가지가 들어가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인지(이름이나 역할), 무엇을 도울 수 있는지(한 줄), 어떻게 말을 걸면 되는지(예시나 버튼)입니다.

가정해 보겠습니다. 어떤 배달 서비스의 고객 문의 챗봇이 이렇게 시작한다고 해요.

"안녕하세요, 배달 도우미입니다. 주문 상태 확인, 취소, 환불 문의를 도와드릴 수 있어요. 아래에서 골라 주시거나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그 아래에 "주문 상태 보기", "주문 취소", "환불 문의" 버튼이 놓입니다.
반대로 "안녕하세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고만 시작하면 사용자는 정말 무엇이든 물어봅니다.
날씨를 묻고, 농담을 하고, 챗봇이 대답하지 못할 질문을 던지게 되죠.

 

두 번째는 챗봇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경계를 알려 주는 것입니다.

챗봇이 똑똑해 보이는 것과 쓸모 있는 것은 다른 문제예요.
처음부터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분명히 알려 주면 사용자의 기대가 맞춰지고, 기대와 실제 사이의 실망이 줄어듭니다.

범위 안내는 이런 방식으로 할 수 있습니다.

  • 첫 인사에서 대표적인 기능을 두세 개만 소개합니다.
  • 범위 밖의 질문이 들어오면 "이 부분은 제가 도와드릴 수 없어요"라고 숨기지 않고 말합니다.
  • 범위 밖일 때도 막다른 길로 두지 않고, 가능한 대안(상담원 연결, 고객센터 안내 등)을 함께 제시합니다.

챗봇이 사람인 척하는 것이 좋을지도 고민이 되는데, 저는 기계라는 사실을 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저는 자동으로 답하는 챗봇입니다"라고 밝히는 편이 사용자의 이해와 신뢰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챗봇 UX에서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 이것입니다.

버튼 방식은 사용자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를 눈앞에 보여 줍니다.
오해가 적고, 정해진 흐름을 안정적으로 따라가게 하며, 모바일에서 입력 부담이 작아요.
대신 선택지가 많아지면 메뉴판처럼 복잡해지고, 사용자가 원하는 항목이 없으면 막막해집니다.

자유 입력 방식은 사용자가 자기 말로 표현할 수 있어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대신 챗봇이 알아듣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는 사용자는 처음에 망설입니다.

그래서 저는 보통 섞어서 씁니다.
시작과 중요한 분기에서는 버튼으로 길을 잡아 주고, 세부 내용이나 예외 상황에서는 자유 입력을 열어 두는 방식이에요.
예를 들어 위의 배달 챗봇에서 "환불 문의"를 버튼으로 고르면, 그다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말씀해 주세요"에서는 자유롭게 쓰도록 하는 식입니다.
단, 자유 입력 칸에서도 "이런 식으로 말해 보세요" 같은 예시를 작게 보여 주면 막막함이 많이 줄어요.

버튼을 쓸 때 하나 더 주의하는 것은 개수입니다.
한 번에 보여 주는 선택지는 서너 개를 넘기지 않는 편이 읽기 편하고, 더 많은 선택지가 필요하면 "기타 문의" 같은 출구를 하나 두고 자유 입력으로 넘기는 방법이 있습니다.
또 사용자가 버튼을 누른 뒤에 되돌아가기가 쉬운지도 확인해요. 잘못 눌렀을 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대화가 금세 피곤해집니다.

 

챗봇은 반드시 알아듣지 못하는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이때 챗봇의 태도가 사용자 경험의 절반을 결정한다고 느껴요.

체크해 보는 항목은 이렇습니다.

  1. 알아듣지 못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말하는가. 엉뚱한 답을 자신 있게 내놓는 것이 가장 나쁩니다.
  2. 같은 문장을 반복하지 않는가. "다시 말씀해 주세요"만 두 번 나오면 사용자는 포기합니다.
  3. 다음 행동을 제안하는가. 비슷한 선택지를 보여 주거나, 질문을 바꿔 보라고 안내합니다.
  4. 몇 번 실패하면 사람에게 연결하는 경로가 있는가. 이 출구가 없는 챗봇은 사용자를 가두는 챗봇이 됩니다.
  5. 실패한 말을 기록해서 나중에 개선에 쓰는가. 알아듣지 못한 질문 목록은 다음 기능의 힌트가 되기 때문입니다.

더 자세한 단계 설계는 폴백 처리를 다루는 글에서 따로 이어서 정리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말투와 길이도 설계의 일부입니다.
챗봇의 말풍선 하나는 길어야 세 줄 정도로 끊고, 한 번에 하나의 질문만 하는 것이 좋다고 느껴요.
가정해 보면 "주문 번호를 알려 주세요. 그리고 문제가 된 상품과 사유도 적어 주세요. 환불 계좌도 필요합니다."처럼 한꺼번에 묻는 것보다, 주문 번호부터 하나씩 차례로 묻는 편이 대화가 훨씬 가볍습니다.
말투도 서비스의 성격에 맞게 정하고, 한 번 정한 말투는 끝까지 유지해야 일관된 인상이 남아요.

 

챗봇 UX는 말을 잘 만드는 일이기 전에, 사용자가 길을 잃지 않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첫 인사로 방향을 잡고, 범위를 솔직히 말하고, 버튼과 자유 입력을 상황에 맞게 섞고, 실패했을 때 출구를 열어 두는 것이 기본기입니다.

남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사용자가 챗봇에 기대하는 수준은 사람마다 다른데, 한 챗봇이 초보자와 익숙한 사용자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을까요.
이 부분은 실제 대화 기록을 보면서 계속 확인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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