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되면 해외 전시회 소식이 한꺼번에 쏟아집니다.
CES 같은 대형 행사 기간에는 기사가 하루에도 수십 개씩 올라와서, 읽을수록 무엇이 중요한지 오히려 흐려지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주 읽을거리 정리는 특정 제품을 소개하는 대신, 제가 전시회 정보를 어떻게 걸러서 정리하는지를 적어 보려고 합니다.
제품 이름을 나열하면 한 달 뒤에는 쓸모가 없어지지만, 보는 틀은 다음 행사에도 쓸 수 있으니까요.
전시회 기사는 대부분 "이런 게 나왔다"라는 목록 형태예요.
신기한 모양의 기기, 커다란 화면, 움직이는 로봇 같은 것들이 사진과 함께 줄줄이 이어집니다.
읽을 때는 재미있는데, 덮고 나면 기획자로서 가져갈 것이 마땅치 않았어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목록에는 "무엇"만 있고, "왜 지금 이게 나왔는지"와 "내 일과 어떻게 이어지는지"가 빠져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기사를 읽기 전에 질문 세 가지를 먼저 적어 둡니다.
올해 이 행사의 큰 주제는 무엇인가.
그 주제가 내가 맡은 서비스와 닿는 지점은 어디인가.
지금 당장 따라 할 것과 그냥 지켜볼 것은 무엇인가.
이 세 줄만 적어 놓고 읽어도 기사가 훨씬 덜 산만하게 읽혀요.
전시회마다 성격이 달라서, 같은 잣대로 보면 오독하기 쉽습니다.
기술 기업이 앞으로의 방향을 보여 주는 쇼케이스 성격이 강한 행사가 있고, 업계 종사자끼리 거래와 제휴를 맺는 비즈니스 장터 성격이 강한 행사가 있어요.
일반 소비자를 만나는 자리인지, 구매 담당자를 만나는 자리인지에 따라 전시물의 완성도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저는 기사를 읽다가 "이건 컨셉인가, 곧 팔 제품인가"를 꼭 구분해서 적어 둬요.
컨셉 전시는 먼 미래의 방향을 읽는 재료이고, 출시 예정 제품은 실제 시장 경쟁을 읽는 재료입니다.
둘을 섞어서 읽으면 "내년이면 다 이렇게 되겠네" 같은 성급한 결론이 나오기 쉬워요.
화려한 컨셉이 몇 년 뒤에도 보이지 않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합니다.
제가 쓰는 틀은 다섯 칸이에요.
첫째는 반복되는 키워드입니다.
여러 기업의 발표에서 같은 단어가 자꾸 나오면 그게 올해의 흐름이라고 봅니다.
요즘은 음성으로 기기를 다루는 이야기와, 여러 분야에 붙어 나오는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눈에 많이 띄는 것 같아요.
둘째는 연결 방식입니다.
기기 하나가 신기한 것보다, 다른 기기나 서비스와 어떻게 이어지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셋째는 사용 맥락입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쓰는지가 그려지는 전시인지를 봅니다.
쓰는 장면이 그려지지 않으면 기술 자랑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어요.
넷째는 가격과 시기입니다.
가격도 출시 시기도 없으면 아직은 아이디어로 읽습니다.
다섯째는 빠져 있는 것입니다.
다들 이야기하는데 아무도 보여 주지 않는 부분, 예를 들어 데이터를 어떻게 다루는지 같은 이야기는 나중에 병목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따로 적어 둡니다.
기사를 읽을 때마다 같은 칸을 채우면 나중에 다시 볼 때 편해요.
제가 쓰는 칸은 이렇습니다.
- 항목: 기사에서 본 제품이나 서비스의 이름
- 한 줄 요약: 무엇을 해 준다는 건지, 내 말로 한 문장
- 구분: 컨셉인지, 출시 예정인지
- 내 일과의 연결: 우리 서비스에서 참고할 부분이 있는지
- 후속 행동: 더 읽기, 따라 해 보기, 지켜보기 중 하나
- 빠진 것: 기사가 말하지 않은 부분
칸이 많아 보여도 항목당 1분이면 끝나요.
중요한 건 후속 행동 칸입니다.
여기가 비어 있으면 그 기사는 읽은 게 아니라 구경한 거라고 스스로 정해 두었어요.
가정해 보겠습니다.
어떤 기업이 안에 카메라가 달린 냉장고를 선보였다는 기사를 읽었다고 해요.
실제 제품이 아니라 설명을 위해 만든 가상의 사례입니다.
메모는 이렇게 채웁니다.
- 항목: 가상의 스마트 냉장고
- 한 줄 요약: 냉장고 안 식재료를 사진으로 알아보고 만들 수 있는 요리를 추천해 줌
- 구분: 기사에 가격과 출시 시기가 없어서 컨셉으로 분류
- 내 일과의 연결: 우리 서비스가 레시피 추천이라면, 식재료를 직접 입력하는 부담을 줄이는 방식은 참고할 만함
- 후속 행동: 지켜보기, 다만 식재료 입력 화면 아이디어는 따로 메모
- 빠진 것: 냉장고 안 사진을 어디에 저장하는지에 대한 설명
이렇게 적어 두면 "신기하다"에서 끝나던 기사가 "입력 부담을 어떻게 줄일까"라는 내 일의 질문으로 바뀝니다.
제품 자체가 성공하느냐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그 제품이 던진 질문이 쓸모 있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 습관을 더했어요.
저는 기사를 읽을 때마다 바로 결론을 내리지 않고, 메모만 쌓아 두었다가 주말에 한꺼번에 훑어봅니다.
같은 키워드가 메모에 세 번 이상 나오면 그 주의 주제로 삼고, 한 번만 나온 것은 흘려보내요.
행사 기간에는 정보가 많으니 이렇게 걸러야 마음이 편합니다.
전시회는 결국 "업계가 지금 무엇을 내보이고 싶어 하는가"를 보여 주는 거울이라고 생각해요.
그 거울에 비친 모습을 그대로 믿기보다, 무엇을 보여 주고 무엇을 안 보여 주는지까지 읽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같은 틀로 행사를 계속 기록하면 흐름이 어떻게 바뀌는지가 보일 것 같아요.
남는 질문도 있어요.
컨셉과 실제 제품 사이의 거리를 얼마나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기획자인 제가 해외 행사를 보고 실제 일에 옮기기까지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일까요.
다음 주에는 이 틀로 한 주 동안 읽은 것들을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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